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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공부

 

 

  불교 공부
 

 
작성일 : 10-10-31 06:03
불교란 무엇인가?
 글쓴이 : admin
조회 : 6,328  

 2. 불교란 무엇인가?

   (1) 진리에 대한 깨달음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행하는 종교다. 그러므로 불교의 교주는 부처님이다. 그러나 부처님 스스
     로 한 번도 당신이 세상의 절대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다만 세상의 진리를 먼저 깨달았다고 말씀하
     셨을 뿐이다. ‘불교’의 ‘불(佛)’이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 ‘붓다(Buddha)'의 음사로 ’깨달은 사
     람 ‘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깨달음인가? 바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다.

     불교에서는 누구라도 진리를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진리를 깨치면 신조차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절 입구에 서 있는 사천왕들은 본디 하늘에 사는 신이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감격한 나머지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토록 부처님 법을 보호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스스로 발심하
     여 부처님 도량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불교의 진리는 하늘의 신을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그 경지조차 뛰
     어넘는 가장 수승한 가르침이다.

     삶을 당당하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의 결과도 자못 다르다. 불교의 진리는 우리가 당당하
     게 살 수 있는 지혜를 준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성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그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
     은 자신의 목표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고, “난 안 돼” 하면서 소극적이고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그만큼 
     더 목표와 멀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 있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바른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
     다. 진리를 깨닫고 행하면서 사는 삶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겠는가. 불교는 바로 이 길을 제시하고 있
     다.

   (2) 삶을 직시하여 그 해답을 제시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궁금해 하며 해답을 찾아 헤매다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도 있다.
     한평생을 살면서 목숨 걸고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진정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란 나도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말은 쉽지만 태어나는 일만 생각
     해봐도 얼마나 고생스럽고 힘든 일인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받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사느니, 못 사느니 힘겨워한다. 그리고 큰 병에 시달리거
     나 평생을 서로 의지하던 사람의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 고통과 아픔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렇듯 
     돌아보면 삶의 많은 시간이 즐거움보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져있다. 환희의 시간보다 슬픔과 후회의 
     시간이 더 길고 많다. 그래서 삶을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왜 사는지, 왜 이 길을 가야하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끝도 모를 삶을 그저 안개 낀 다리
     를 건너는 사람처럼 어림짐작으로 살고 있다. 이렇듯 길을 모르면서 그저 어둠 속을 헤매듯 살아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은 모르면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모르고 사는 삶을 알고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이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무섭
     다는 말이 있다.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런 가책 없이 그 행위를 반복하기 때문이
     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고, 그것이 나와 남에게 아픔을 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교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
     고 있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벌판을 걷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달려왔다. 그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
     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작은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는 마침 칡넝쿨이 있
     어서 급한 나머지 그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물 바닥에는
     무서운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있었다. 두려움에 위를 쳐다보았더니 코끼리가 아직도 성난 표정으로 우
     물 밖을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니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에서는 작은 뱀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 칡넝쿨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날아와 칡넝쿨에 집을 지었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그 꿀을 받아
     먹으면서 달콤한 꿀맛에 취해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잊은 채, 꿀이 왜 더 많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에
     빠졌다.

     이 이야기는 《불설비유경(佛說譬兪經)》의 ‘안수정등도(岸樹井藤圖)’에 나오는 인생에 대한 비유
     다. 여기서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칡넝쿨은 생명줄을,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
     을 의미한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이며, 벌 다섯 마리는 인간의 오욕락(五
     欲樂)을 말한다. 오욕이란 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을 말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처지를 잊은 
     채 탐욕의 꿀맛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은 인생이다.

     어떤 사람은 욕망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으로 얻는 것보다 욕
     망 때문에 잃는 것이 더 많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마음은 지혜를 흐리게 한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없
     애고 참된 지혜를 발현토록 해야 한다. 어리석음으로부터 깨어날 때 우리는 코끼리와 독사의 위협으로부
     터 벗어날 수 있다. 깨닫는 순간 코끼리도, 우물도, 두 마리의 쥐도, 독사와 뱀도 말끔히 사라지고 완전한 
     자유와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3) 주인공은 나 자신

     때때로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야!”라고 짜증을 내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자신도 그곳을 복잡하게 만드는 장본인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일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다. 어
     떤 일에서든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그 일의 주인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이러
     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지옥에 있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산다. 먹을 것이 있어도 자기만 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지옥의 숟가락
     은 너무 길어 자기 수저로 제 입에 밥을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대방을 
     원망하면서 굶주리고 산다. 눈앞에 먹을 것을 두고도 말이다.

     그러나 극락에 있는 사람들은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먹을 때는 서로서로 먹여주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은 지옥 사람들과 달리 모두 맛있게 먹으며 행복하게 산다.

     이는 지옥과 천상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교훈이다.
     자신만을 위해 탐욕스럽게 사는 사람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람의 삶은 대조적이다. 이처럼 자기중심적
     인 삶을 이웃과 함께하는 삶으로 바꿀 때, 괴로움의 세계가 자유와 평안의 세계로 바뀔 것이다. 대립과 갈
     등, 고통으로 얼룩진 세계를 바꿔나가는 원동력은 세계의 구성원인 나 자신이다. 즉 세계를 바꾸는 것은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주인공인 자기 자신의 지혜와 그 지혜로 말미암는 걸림 없는 행위이다.

   (4)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이다. 그래서 불교는 믿음과 더불어 스스로 노력하는 수행을 강조하며,
     그런 수행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부처님을 믿고, 나아가 나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과 진리를 믿어 자신을 비추
     어 보며, 이웃 중생의 아픔을 덜어주고 함께 사는 아름다움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불교이다. 절대자에게 
     무조건 빌어 용서를 받고 그에게 귀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불성을 깨워 내 자신
     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 곧 믿음과 수행을 겸비하는 불교의 참모습이다.

     수행이란 혹독한 시련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고행과는 다르다. 진리를 깨치기 위해 탐욕에 찌든 자신의 잘
     못된 습관을 좋은 습성으로 바꾸어 마침내 깨닫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근기(根機) : 사람이 가
     지고 있는 근본 바탕에 따라 다양한 수행체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사상체계를 이루면서, 다시 수많은 조
     사스님들과 수행자들이 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이처럼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의 특징은, 절대자로부터의 구원만을 중시하고 유일신을 강조하는 다른 종
     교와 차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불교도 부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통한 구제의 길도 열어 놓
     지만, 결국에는 내면의 힘을 키워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의 길로 향한다. 나를 철저히 버리고 그것이 부처
     님 마음으로 변하는 내면의 변화는 믿음과 수행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 점을 강조한 것이 불교이다.

   (5) 지혜의 길

     부처님 가르침을 지혜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지혜 
     없이는 깨달음도 없다. 그러면 지혜는 지능지수가 높은 것을 말하는가? 아니다. 지혜는 지능이나 지식과
     는 다른 개념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먼저,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한다. 바른 생각에서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다. 즉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과 전체를 통찰할 때 지혜가 열린다. 부처님은 지혜의 길을 어떻게 설명하
     셨을까?

너희들 비구여, 만일 지혜가 있으면 곧 탐착(貪着)이 없어지는 것이니,
항상 스스로 자세히 살피어 그것을 잃지 않도록 하라.
이것은 우리 법 중에서 능히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미 도인도 아니요 또 속인도 아니라,
무엇이라 이름 붙일 것이 없느니라. 실지혜(實智慧) : 진리를 달관하는
참다운 지혜는 곧 늙음과 죽음과 병듦의 바다를 건너는 굳건한 배요,
또한 무명(無明)의 어둠 속의 큰 등불이며, 모든 병든 자의 좋은 약이요,
번뇌의 나무를 치는 날카로운 도끼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듣고,
생각하고, 닦는 지혜로써 자기를 더욱 길러야 한다.
만일 사람이 지혜의 빛을 가졌다면, 그것은 비록 육안(肉眼)이지만
그는 밝게 보는 사람이다. 이것을 지혜라 하느니라.
《불유교경》

     그렇다면 지혜의 가르침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고 있는가?
     첫째,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비록 원수 사이일
     지라도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거나 원망과 욕심을 버리면 함께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가 생긴다. 대립과 갈등의 원인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다.

     화가 났을 때,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해 보면 화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지만, 자신에게도 있음
     을 알 수 있다. 즉 상대가 자기가 바라는 만큼 해주지 않았거나 자기에게 불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그 또한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보면 당시의 화
     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것이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무명(無明)이다. 
     이 무명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밝은 지혜의 눈을 뜰 수 있다.

     둘째, 자신의 무지가 모든 불행과 비극의 시초임을 알았다면, 그 다음은 남을 나처럼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뒤에 오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에 앞서 그 결과를 생각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에 앞서서 행동부터 한다
     잘못된 행동 때문에 고통과 아픔이 생긴다. 따라서 눈앞의 이익에 연연한 행동과 욕망에서 벗어나
     면 지금까지 보지 못 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불교는 바로 이러한 세계를 열어 보여주며,
     그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가르침이다.

   (6) 참 나를 찾아서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겐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어라.

《법구경》《우암품愚闇品》

     우리 삶은 올바른 진리의 길에 들어설 줄 모르고 감정과 욕망에 이끌려, 마치 뱀의 꼬리가 앞장서서 길을 
     가려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가시덩굴에도 들어가고 불 속에도 뛰어들고 결국에는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격
     이다. 이를 두고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중생이 불타는 집에서 윤회하는 것은 끝없는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라고 하였다.

     참나, 본래의 청정한 나를 찾으려면 먼저 탐욕을 버려야 한다. 참 나는 곧 진리요, 깨달음이다. 그래서 참 
     나를 찾아가는 길은 곧 깨달음을 향한 길이다. 참 나를 찾지 못한 사람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요,
     그런 사람에게 생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숲 속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고 계셨다. 이 때 젊은이들이 숲 여기저기 무엇인가를 찾아다니다가 나무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부처님을 보고 다급하게 물었다.

“한 여자가 도망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사연인 즉, 그들은 근처에 사는 지체 높은 집안 자제들인데, 50명이 저마다 아내를 데리고 숲에 놀러왔다. 그 중 총각 한 사람이 기생을 데리고 왔는데, 모두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그 기생이 여러 사람의 옷과 값진 물건을 가지고 달아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여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사정을 듣고 난 부처님은 그들에게 물으셨다.

“젊은이들이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자기 자신을 잊고 여인을 찾아 헤매던 그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다들 거기 앉아라.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찾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젊은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모두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사분율》제32권

     이 젊은이들은 자신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 출가했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탐욕과 욕망의세계로 
     계속 달려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탐욕의 끝은 파멸이요 절망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항상
     탐욕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사십이장경》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도 왕자의 지위를 문틈에 비
     치는 먼지처럼 보고, 금이나 옥 따위의 보배를 깨진 기왓장처럼 보며, 비단옷을 헌 누더기같이 보
     고, 삼천대천세계를 한 알의 겨자씨 같이 보아 궁궐을 버리고 출가하여 위대한 깨달음을 얻으셨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세속의 탐욕을 벗어났음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늘 당신을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라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괴
     로움에서 벗어난 지혜와 평화의 길을 가르쳐주셨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달음과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몸소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
     다.

     고려시대 야운(野雲)스님은 자신의 수행을 살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많은 사람이 부처님 법 안에서 도를 이루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아직도 고해苦海에서 헤매고 있는가. 그대는 시작 없는 옛적부터 이생에 이르도록 깨달음을 등지고 속진俗塵에 묻혀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있구나. 항상 악업惡業을 지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고 착한 일을 하지 않으니, 생사生死의 바다에 빠진 것이 아닌가.
《초발심자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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